7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불편한 진실이며, 특별히 믿지 않는 이들에게 마주하기 싫은 이야기인, 영원한 멸망의 형벌..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을 외치면서 받는 고난과 환난은 원하지 않기에 전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내 뜨뜨미지근한 모습에 대하여..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 그렇기에, 부르심(calling)을 받은 우리로써는, 마땅히 그 부르심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그것이 나에겐 어떠한 의미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는 것 또한. 내가 지향해야 할 내 미래의 모습이다.
Chapter 2.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 2장 전반에 걸쳐 나오는 거짓선지자, 미혹케 하는 자, 배도하며 불법하는 멸망의 아들에 대한 예언.. 그리고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 (NIV참조) stand firm, hold to the teaching they passed on to us. strengthen ourself in every good deed and word.
- 성경의 가르침, 즉 선한 일과 말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더욱 굳건히, 강하게 하고 더욱 담대히 서는 것..
Chapter 3.
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믿음은 모든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요즈음 나타나는 여러가지 현상들을 생각나게 한다. '기독교 신자'지만 굿을 벌려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 교회는 나가지않으나 여전히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가나안'이라 불리는 사람들(거꾸로 읽으면 안나가 이기 때문). '신앙'이 삶의 첫 번째 우선순위인 것은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하고 되려 이단에게 공격받는 리스트의 일순위에 오르는 정도의 영향밖에 없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점차 믿음을 치부하고 져버리는 사람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이 복음이,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원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속하여 그 은혜안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이 아닌가. 내 삶을 돌아보고 다시한번 바로세우기 원한다.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 규모없이(idle: 한가하게, 시간이 비어있는) 행하는 자들이 되지 말라
- 양식을 값없이 먹지 말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밤낮)로 일하라 :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게(do not be dependent to anybody)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하며, 순종치 않는 자들을 '원수'로 대하지 말고 오직 '형제'로 대하며 권하라고 권고한다. 선을 행하는 것은, 특별히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일수록, 그 내면 깊은곳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는 것인지. 나의 선행의 동기는 무엇인지. 우리들의 선행의 동기는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되돌려(hand back)주는 것이어야만 낙심치 않을 것이다. 내 마음 속의 모든 행동의 동기를 다시한번 짚어본다.
* 데살로니가후서 3장 내용의 전체적 문맥상 흐름을 보면, 단순히 선을 추구하라 수준이 아닌, 적극적으로 선행을 도모(planning)하는 것을 강조하고, 규모없이 행하지 않는 것(do not idle)을 통해 열정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럼(주야로 일하며 선행하여 힘들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비판하거나 원망치 않고 나눠주며 선을 행하며 형제로 대하는 삶, 다시말해 관계에 있어서 그 어떠한 인간들의 논리를 뛰어넘어, 초월하고 초연한 마음가짐을 갖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을 과연 할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이다!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어찌 피조물이 조물주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하는 이들과, 요란케 하여 분별력을 잃게하는 것에 대한 경계.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르게 알고 있는가?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된 자신을 피력함. 그와 같은 확신을 단지 '믿음' 하나만으로 가질 수 있을까? 가능할까..?
- 바울의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시절에 대한 회의와, 그로 인해 핍박하던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상황으로 인하여 오히려 영광을 돌리게 된 자신의 모습을 주장.
Chapter 2.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2장 전체의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하여 생각하던 이분법적 사고의 그 당시 사람들은, 우선은 그리할 수 밖에 없는 인습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또한 사람의 특성이 자고하기 원하고 당짓기 원하며 편가르기 원하는 특성인지라, 그러한 특성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그 시대에 도드라지게 되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그 때에 오시지 않았다면, 그것이 굉장히 삐뚤어진 곳으로 치달아 바벨탑과 같은 일들이 한번이 아니라 몇십 몇백번이라도 일어나지않았을까? 역사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각 나라와 시대별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통치'하기 원했으며 모두를 '군림'하기 원했고, '다스리'기 원했는가. 하지만 애초에 사람이 누군가를 다스리고 '통치'하며 심지어 '책임'을 진다는 것이 가당한가. 하나님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의 결과는, 역사가 늘 증명하듯, 패망이다. 그렇기에, dependent 가 필요하다. 그저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바라며 사랑하며 사는 것..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다. 이제 그가 사는 이유는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한다. 왜 이 말씀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었는가..
Chapter 3.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폐하셨다. '믿음'이 온 이후로는 우리를 가르치던 몽학선생(율법)아래 있지 않다.
Chapter 4.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for being like Jesus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 아브라함의 두 아들 (계집종 vs 자유하는 여자)
다시말해 하가(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와 예루살렘(자유자)의 자녀가 있다.
믿음이 있는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임을 미리 비유하신 것이다..
그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하나님은 자유자의 자녀를 원하신다. 나는 자유자의 자녀로써 삶을 계속해 살아내야 한다.
Chapter 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자유를 주셨음에도, 여전히 율법적인 부분에 메여 살기 원하는 죄된 우리들. 우리의 무지함으로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삶. 지난 나의 삶..
아. 얼마나 은혜인가.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주의 은혜. ㅠㅠㅠㅠㅠ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 Jesus Christ. He is the only one who should be obey the whole 'Rule'
- He is the only way to obey everything...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our Hope :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우리의 믿음만이 그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 별표 백개!!!!!!!!!!!!!!!!!!!!!!!!!!!!!!!!!!!!!!!!!!!!!!!!!!!!!!!!!!!!!!!!!!!!!!!! -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다. 이 은혜로 말미암은 자유의 기회를 가지고, 육체의 정욕을 좇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자...그저 그분의 사랑에 매여..그분의 사랑에 빚 그 빚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자. 그저 용서하자. 그저 사랑하자. 그저 베풀자. 그저 나누자.
[육체 vs 성령]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Q: 육체를 좇길 원하는 내 본성, 내 죄악된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A: 성령을 좇아라!
<개역한글판>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음행 : 음탕하고 난잡한 짓
- 더러운 것 : 때나 찌거기 따위가 묻어 지저분하다
- 호색 : 여자와 성적관계를 맺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함.
- 우상숭배 : 신 외의 사람이나 물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함
- 술수 :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교묘한 생각이나 방법
- 원수를 맺는 것 : (자기나 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을 맺음..
- 분쟁 : 서로 시끄럽게 다툼
- 시기 : 남이 잘되는 것을 샘을 내고 미워함
- 분냄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 당 짓는 것 : (당쟁:권력을 잡기 위해 당파나 정당 등으로 나누어 싸움을 벌임.)
- 분리함 : 서로 나뉘어 떨어지게 하다
- 이단 : 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의나 교파를 적대함. 끝이 다름.
- 투기 :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얻으려 함. 내던져버림,
- 술취함 : 술을 마셔 정신을 차리지 못함.
- 방탕함 :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함. 술,성적쾌락, 노름 등에 과도하게 빠져 바르게 살지 못함.
- 사랑 :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다른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방언보다는 예언을 중시하는 사도바울. '덕'을 세우기 위하여, 방언보다 예언이 좋다 한다.
14: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14: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 요즈음의 시대에 이 성경구절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바꾸어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아닌가?
Chapter 15. '복음'
바울은 복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죽은자들의 부활은 있다.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없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린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이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이 거짓이라면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한다.
그 부활이 없다면, 이생이 끝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속지 말라 한다.
그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니, 깨어서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한다.
부활할 당시의 몸, 어떠한 몸으로 오는가에 대하여, 첫 사람은 땅에서 난 흙에 속한 자이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 속한 자라 한다.
----- 결국, 죽음, 다시말해 '사망'에 대한 태도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다. 즉 다시말해, 이생에서의 삶이 끝인 자에게는,
내가 누릴 것들을 다 누리고, 내 만족과 내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 어차피 의미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한번 사는 인생, 뭐가 두렵고 뭐가 무서운가? 무엇이 그리도 겁이 나는가? 어느정도의 이기심은 인간에겐 당연한 것이다.
애초에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 주변은 다 내편, 내가 챙기고, 내 아는 사람, 인맥은 잘되게 하고.. 다 좋다. 하지만 집단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내 주변 '은' 이 아니라, 내 주변 '부터' 시작하여 퍼져나가야 한다.
그 안에서 고여있으면 안된다. 퍼트려야 한다.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섬김이 필요하다. 불필요하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일들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많은 어른들은, 사회정서상, 문화상 이런 것들을 몸으로 알고 있다. '정'이 무엇인지, 인지상정이란 어떠한 것인지.
'충, 효, 예, 의' 와 같은 것들 말이다.
<충, 효, 예, 의>
忠: 나라에 무엇하여 충성하는가? 나라의 본질은 '하나'였다. 우리는 다 하나다. 갈수록 글로벌화가 심해지는 이 시대에, 민족주의와 집단이기주의는 지양해야 하고, 조금 더 섬기고 희생하는 정신이 '집단'적으로 존재하여, 한 마음으로 다른 나라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때 비로소 성장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나라에 충성함은 당연하나, 국가간의 분쟁과 갈등이 없고 평등과 공평함의 전제하에 이루어 질 때 비로소 '충'의 본질적 의미가 실현된다 하겠다.
(대표적 예로, 수많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일본군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했으나, 우리나라에게는 피눈물이 흐를 오욕과 설움의 역사를 안겨다 주었다. 그것이 진정한 '충'인가? 그릇된 나라의 방향을 묵과하는 것은 결단코 충이 아니다.)
孝: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하물며 동물도 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의 육의 부모일 뿐, 우리와 동등한 존재이다. 우리와 함께 그 날이 되면 같은 모습으로 형제와 자매가 될 우리의 '지체'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가 '부모'님께 하듯, 우리의 이웃들(지체)에게 한다면, 보다 더 성경적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
禮: 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도와 도리들, 도덕이나 인습적인 좋은 모습들.
그러나 이 '예'는, 각 문화와 시대의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즈음은 갈수록 '원하는' 것을 권해주어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주는 것이 오히려 강요나 짜증나는 행위가 되는 듯 하다. 대표적인 예로는 '담배피는 고등학생에게 훈계'를 한다거나, '전도'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랄까.
義: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몇주째 베스트 셀러가 될 만큼,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아니 전세계의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영화의 수퍼히어로나 드라마의 신념있는 주인공들은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정의'이지만, 그 정의 역시 그들이 원하는 '모양새'가 아니면 안된다.
한 예로, 칸트의 공리주의와 같이,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들을 위하여, 기득권자들에게 있는 자원을 공평하게 배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
그것이 비기득권자들은 '정의'라 이야기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아니라 한다. 부당하다 한다. 자신들이 정당하게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재산권이 있으며, 침해하지 말라 한다.
결국, 개개인이 자신들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 고리는 절대 끊기지 않는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더욱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 하는 바울의 권면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에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고 있음을 상기해준다.
나는, 그의 권면에 따라, 내 자리에서의 삶과,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내 삶의 방향성과 견주어 점검해야 한다.
조금만 방향이 어긋나도, 매우 극단적 방향으로 치닫을 수 있다.
거울과 같이, 내 매무새를 만지듯, 매일 매일 점검해야 한다..
Chapter 16. '복음'
마지막 장,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모습 속에서 바울은,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문안하라~ 와 같이, 많은 '사랑으로 이미 행한 사람들'을 열거하며, 그들을 '알아주라'고도 하며, 축복하고 격려하면서 글을 마친다.
----- 사랑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것.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랑의 여러가지 의미
'필리아, 에로스, 아가페' 와 같은 의미들 중 대부분의 사랑은 '필리아' 또는 '에로스'에 그 의미가 전부인 것으로 일반화 되어있다. 그 중 '에로스'를 잘못 받아들일 경우, 부부에게만 허락한 아름다운 '성'을 그저 '사랑'하던 사람이니까 그당시의 성은 가능하다 로 합리화하는 '방종'을 초래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서로가 서로를 더불어 음욕이 불일듯 하는 것을 '사랑'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보다 '아가페'와 같은 사랑,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을 의미한다. 서로를 향한 '지체의식'으로, 비교하고 깎아내리고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격려'와 '섬김', '용서'를 통한 그 사랑의 진정한 기능인 '세움'을 구현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 사랑이라는 행위는 현대 우리 사회 속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고 외롭고 열등감속에서 스스로 죽어가던 사람을
그 어떠한 기계도, 약도 고치기 힘이들고 어렵지만
오직 성경의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섬김'이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땅히 올바르고 하나님을 닮은 모습들(경건함)을 나타냄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회복되고, 올바르게 세워지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나의 애매하고 모호했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하며,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분명한 지표를 하나 하나 차근차근 읽어보아야만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내 가정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를 바로해야 한다. 내가 먼저 바로서지 않고, 깨어있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다른 이들에게 멍청이와 같이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말만 해 줄 수 없다. 삶의 수많은 문제와 복잡성들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어떠한 예외 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을 가지고 접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