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이상의 삶 (~2010/11/29)

Review/읽은 책 2010. 11. 29. 17:52







각 단원의 목차를 나열하며 느낀점중 하나는,
목차만 읽어보았을 때 내용이 기억나는게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망하게도.

을 보고 썼던 리뷰에서처럼, 각 목차별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summary 해 보며 remind하고자 한다.
너무나 좋았던 책이기에. 많은 가르침을 준 책이기에.
아니 너무나 나의 죄에 대하여 상세히 요약해 둔 책이기에 두번다시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싶어서..





1. 변신준비완료
* 평범함에 대한 실망
'평범함' 자체에 실망하는 저자의 모습은 나와 참 많이 닮아있다.
아니, 대부분의 크게 힘든일이 없거나, 혹은 즐거운 일이 없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공사례'들에대한 갖가지 분석이 난무한 책들로 가득한 서점에서 마치 나도 그 '성공사례'에 끼지 못하면 패배자가 될법한 강박을 심어주는듯한 느낌을 받는 21세기의 시대를 지내는 요즘, 나역시도 평범함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의 조건인지 깨닫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추수감사절을 갓 지난 시기인지라 부득이하게  '감사'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 
아..따분하다..라고 느끼시더라도 끝까지 읽어달라! (읽기 싫으시다면 손가락 버튼을 눌러주시던지)
더 좋은아빠, 더좋은사람, 더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는사람이 되지못하는 자신에 대해 실망한다고 하는 저자. 
하지만 더 실망하는 부분은 사실 자신이 그 이유들 때문에 실망하는일이 드물기때문이란 말에 참 공감했다 ㅋㅋ

* Dis-appoint (제 위치를 벗어난) 상태; 자신의 현재위치를 아는 것.
* 옷장속 나니아로 들어갔던 모든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변화'하였다는 것.
* 목표의 변화
  (롬8:29)에 쓰인 "그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에서의 <Summorphizo : 다른것과 동일한 형태를 갖는 것..>의 뜻.
   즉, 우리의 원형의 형상, 그리스도를 다시 닮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다시 돌아가야, 변해야 한다..
*  메이블의 변신 
   움직일수도, 볼수도, 들을수도, 말을 나눌 사람이 없음에도 매일 매순간 긴 세월을 침대에 누워서 찬양하며 감사한
   메이블 할머니. 과연 이것이 말이 되나? 난 할수 있을까? 나에게는 이러한 믿음과 감사가 있기는 하나?
   시편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말씀을 100%로 사는 삶이 아닐까..
    
 

2. 변화에 놀라다
*절대 변하지 않는 남자
 행복의 바다에서 나쁜소식의 섬만을 찾아내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남자 행크.
 그는 어떤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행여 다른이를 칭찬하면 그가 교만해질거라는 가정하에 모든 행동을 하였고,  모든사람이 늘 겸손하도록 종용(설득,권고,강권)했다.그는 교만을 제거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 같았다.
 죄수가 쇠구슬을 달고다니듯 행크는 판단과 비판을 달고 다녔다. 
 자신이 만나는 모든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행크. 심지어 그는 그의 아들의 멋진로맨스(춤을추다가 배우자를 만  난)도 알지못했다. 왜냐하면 행크는 춤추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비평하고 판단하고 불평했고, 그에 따라 그의 영혼은 점점 더 위축되었다.
 행크는 까다로운 젊은이였고, 까다로운 늙은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행크의 이러한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행크가 '더 사랑스럽고, 더 즐겁고, 더 친절하고, 더 아름다운 성품을 갖게 될 것' 이라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같은 
'이땅의소금'
 - "나의 경우와 다르다, 나는 이 사람과 다르다" 고 힘주어 말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찾지를 못하겠다...
     
    ...까다롭다기보다 확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타협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적어도 내가생각하기엔)들을 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이 무지함과 악함이 만연한 요즈음의 
     시대를 반영하는 표상이라고 생각했다. 참 교만하였구나.
     나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본을 보여야 했고, 그들과 달라야 했으며,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며 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자들의 모습과 닮지 않기 위해 발악하고 또 발악하며 노력했다.
     주위에서 '넌 너무 힘들게 산다, 너무 일이많다, 너무 고민이 많다, 너무 무거운 짐을 혼자 다 떠안고 산다' 라고 
     말하는걸 들을 때에도 나는 날 걱정해 주는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기보다는 내가 가는 길이 맞다며 어느새
     방어기재를 발동시키고 있었다.
     행크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데..


*사이비변화 :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지 못할 때 생길 큰 위험은 사이비 변화로 만족하게 된다는 것.
                   나는 올바른 변화를 체험하였는가. 아니면 비그리스도인과 다르다고 느끼는 외적인 방법으로 나를
                   그저 포장만 하고있는것은 아닌가.
                   사랑과 기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발견하였는가?



*경계표시신앙  
"주님 소득의 십분의 일(십일조)을 입사이후부터 꼬박꼬박 내고있으며, 
탈세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않고, 술을 마시지않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저들과는 다르게 정직하게 살고, 저들과는 다르게 구원을 받았으며, 저들과는 다르게 양심적으로 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과연 저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일까? 한번 생각해보고싶다.
바리새인들과 다를것이 대체 무엇이며, 얼마나 '나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경건인가 말이다.


어느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한계없는 무한한 사랑에 선을 긋고 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잣대 저 잣대로 계속하여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돌을 던졌다. (마녀사냥까지했지)
지난 2010년을 돌아보니 나 역시 그러한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것조차 민망하다)중 하나였다.
누군가의 weakness를 들추어 내어 정죄하고, 판단하고, 상처입히고...
또한 그러한 행위 뒤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교만함과 ..합리화. 나는 올바른 길을 걷고있어. 난 저사람과 달라.
라고 하는 안도감과 위안.
하지만 이 '경계표시신앙' 이라는 저자의 말을 보고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했다.

식스센스 이후의 최고의 반전. 
나는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애박..




3. 훈련 vs 노력
4. 룰루랄라 즐거운 날
5. 천천히 사는 삶
6. 천국에 개입하다
7. 적당히 작아지기
8. 후회 이상의 삶
9. 인도 받는 삶
10. 자유의 삶
11. 분열되지 않은 완전한 삶
12. 잘 정돈된 삶
13. 인내하는 삶



그 외에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정해서 정리할 계획. (2012.10.19)

한번 더 읽고 리뷰를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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